나를 감옥에 가둔건 직장상사가 아니라 내 죄책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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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나를 억누른 건 상사도 부모도 아니라,
"좋은 사람이어야 해"라는 내 안의 목소리였다.
이 주제를 가지고 글을 작성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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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9시.
주말의 끝자락이 아쉬움처럼 흘러가고,
월요일이 느릿하게 다가오는 시간.
무심코 고개를 돌려 휴대폰을 바라본다.
그리고, 어김없이 울리는 진동.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초록색 버튼을 옆으로 민다.
익숙하면서도 이제는 멀게 느껴지는 목소리.
가장 가까웠던 사람의, 가장 아득한 말씨.
“밥은 잘 챙겨 먹니?”
그 말 뒤에 따라오는 건,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많은 걱정들.
사랑인 줄은 안다.
하지만, 때로 그것은
모두가 서로를 감시하는 파놉티콘 같다.
좋은 의도라는 이름 아래,
선한 통제가 조용히 들어와
내 숨을 조인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 감정 또한 나의 것이다.
창밖에 빨간불에 멈춰 선 차들이 보인다.
규칙이 있기에,
우리는 충돌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지.
그분들의 은혜를 잊은 건 아니다.
그 사랑 덕분에 내가 있다.
그러나,
이제 그 사랑은
나에게 너무 먼 언어가 되었다.
전화를 끊고도 남아 있는 여운.
“만나는 사람은 없니?”
“이직은 생각 안 해봤어?”
그 질문들에 나는
상대가 바라는 대답을 해줄 수 없다.
작은 죄책감이 스며든다.
이게 내가 보답하는 방식이라니.
얼굴을 베개에 묻는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싫어진다.
‘남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나에게도 중요했다면,
이렇게 힘들 일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노트 한 귀퉁이.
“당신은 자신을 입증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 것.”
그래.
나는 아직 파놉티콘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나를 가둔 사람을 탓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다.
내가 무엇을 하든,
누군가는 고개를 저을 것이다.
“네가 뭔데?”
“왜 너만?”
그 말들이 무서워
내가 나를 꺼내놓지 못한다면,
나는 나를 표현할 기회를 스스로 잃는 셈이다.
수감자라는 외면을 지우지 못해도,
내 내면까지 가둘 수는 없다.
설령, 그 대가가 고통이나 단절이라도.
그것이 내가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진심이니까.

파놉티콘에도 허점은 있다.
한 수감자가 너무나도 빛나기 시작하면,
그 빛은 전염되고,
빛이 너무 밝아지면
결국 모두는 눈을 감을 것이다.
눈을 감았을 때,
세계는 다시 창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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