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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 해운 "세월호" 참사에 대한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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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울국제여행사
댓글 0건 조회 4,928회 작성일 14-04-1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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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들이 1명이라도 더 구조되어 살아 돌아오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만약에 세월호가 보다 안전한 항로로 갔었더라면.....만약 선장이 선장실에서 벗어 나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직접 배를 몰았다면....만약에 선장을 비롯해서 20여명 선원들이 먼저 제 목숨부터 건지려고 도망치지 않고서,"실안에서 마냥 기다리라"는 황당무계한 안내방송 대신에 "퇴선 안내방송"을 시의 적절하게 해서 신속하게 대피시켰다면.....

어느 한 길목에서만이라도 누군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우리들의 꽃다운 아이들......세월호에 탄 17살짜리 아이들은 무사하지 않았을까요?


여객선 침몰 당시 조타실을 맡았던 항해사는 경력 1년이 조금 넘은 3급 항해사 박

모 씨(26)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세월호에 투입된 지 5개월여밖에 안 된 상태

였다. 항해사는 조타실에서 배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세월호 같은 대형 여객선은 1급 베테랑 항해사가 맡아야 하는데 450여명 승객들의

목숨을  왕 초짜에게 맡긴 셈이다.


이런 참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일어난 것일까요?

절대로 아니겠지요....


대한민국에서는 너무나도 유사한 원인-人災로 인한 크고 작은 침몰 사고가 계속됐다.


*1970년 12월15일 오전 1시 승객 331명을 태운 남영호는 서귀포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열흘전에 바뀐 선장은 경험이 부족한 2급 항해사였다. 칠흑 같은 어둠의 바닷속에 조난자들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다 파도에 휩쓸려 갔다. 구조된 승객은 단 12명뿐.


*1987년 6월16일 경남 거제군 해상에서 해금강 관광에 나섰던 목조 유람선 극동호는 폐차 처분된 자동차의 엔진을 달고 있었다. 구명조끼는 도난 방지를 위해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다. 소화기는 녹슬어 작동하지 않았다. 불길이 번지자 선장이 뱃머리를 육지로 돌리려 했으나 기관이 꺼지면서 배가 말을 듣지 않고 가라앉기 시작했다. 승객 86명 가운데 35명이 사망했다.


*1993년 10월 10일 서해 훼리호는 초속 13m의 강풍이 부는 날씨에 출항을 강행했다. 짙은 안개와 높은 파도를 만나 뱃머리를 급하게 돌리다 돌풍과 파도를 만나 침몰했다. 사고 당시 서해훼리호를 운항한 것은 항해사가 아닌 갑판장이었다. 승무원들도 규정의 절반만 탔다. 정원 220명의 배에 362명을 태운 배는 높은 파도에 중심을 잡지 못해 뒤집어졌고, 292명이 사망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유사한 사고가 과연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1852년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호는 남아프리카로 가던 도중 케이프타운 66km 전방에서 암초에 부딪쳐 침몰했다. 사고 당시 승객은 630여명이었지만, 구명보트는 턱없이 부족해 180명만 구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선장이자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여자와 어린이부터 태워라"라고 명령하면서 병사들에게 부동자세로 갑판에 서있게 했다. 이어 여자와 아이들은 3척의 보트에 나눠탔다.
세튼 대령의 명령에 군인들은 끝까지 부동자세로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세튼 대령과 436명의 군인은 배와 함께 운명을 맞이했다.

이후 "버큰헤이드호 전통"은 각종 해상 사고에서 불문율로 자리잡았다.


*1912년 4월15일 타이태닉호는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해 뉴욕으로 가던 중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승선자 2224명 중 1514명이 숨졌다. 당시 타이태닉호는 세계 최대 여객선으로 ‘침몰할 수 없는(unsinkable) 배’로 불렸던 호화 여객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선장과 승무원은 지켜야 할 안전수칙을 무시했다.

 빙산이 떠다니는 위험지역인데도 전속력에 가까운 시속 40㎞의 빠른 속도로 배를 몰았고, 빙산을 조심하라는 무선통신의 경고도 무시했다. 밤바다는 마법에 걸린 듯 고요했다. 망루에 올라 전방을 감시하는 승무원은 망원경을 갖고 있지 않았다. 망원경은 옷장 안에 있었는데 보초 근무하러 나올 때 옷장이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망루에 있던 승무원이 빙산을 발견한 것은 빙산이 눈앞 450m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구명재킷과 구명보트는 승객 수의 절반밖에 없었다. 바다에 뛰어든 많은 이는 북대서양의 차가운 물에서 심장마비나 저체온증으로 30분을 못 넘기고 죽었다. 20㎞ 거리에 화물선 캘리포니아호가 있었지만 통신사가 자느라 구조요청을 듣지 못했다. 응답이 없자 타이태닉호는 신호탄을 발사했다. 하지만 구조요청용 빨간 불꽃이 없어 흰 불꽃을 쏘았다. 캘리포니아호는 이를 불꽃놀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완전 무시했다.

 타이태닉호의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침몰 직전까지 승객 구조를 돕다가 배와 함께 최후를 맞았다. 그는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대피시킬 것을 지시했다. 배가 본격적으로 기울어지면서 남자 승객들이 앞다퉈 구조 보트에 타려고 달려들었는데, 승무원들은 하늘에 권총을 쏘면서 이를 막았다. 타이태닉호의 생존자 대부분이 여자와 아이들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일등항해사 윌리엄 머독을 비롯해 많은 승무원도 마지막까지 승객들을 돕다가 배와 운명을 함께했다. 기관장과 기관사들도 끝까지 전기를 작동시켜 탈출을 도왔다. 배의 설계자 토머스 앤드루스는 구명조끼를 거부하고 시가를 피우며 침몰을 맞았다. 배의 악단은 구명정으로 몰려가는 승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연주를 계속했다.
 

나중에 영국인들은 스미스 선장을 영웅으로 추모했다. 그의 고향인 영국 리치필드에는 선장을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졌다.


*2009년11월13일 세월호를 일본에서 운항했던 '마루에 페리'사의 아리아케호는 도쿄에서 오키나와를 향해 운항하던 중 미에(三重)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이 배는 세월호를 만든 일본 하야시카네 조선소가 세월호와 비슷한 시기에 만든 선박이다. 세월호(6825t)보다 큰 7910t급이다. 정원은 426명이지만, 당시는 비수기여서 승객은 7명에 불과했다. 전체 승무원은 21명이었고, 컨테이너·자동차 등 3249t의 화물이 실려 있었다. 아리아케호는 이날 오전 5시쯤 6.9m 높이의 파도를 맞고 급격히 선박이 기울어졌다. 이 때문에 화물 고정 장치가 풀리면서 대형 컨테이너가 쏟아졌다. 이 배는 결국 90도까지 기운 상태에서 표류하다 침몰했다. 최초로 기울어진 원인은 달라도 전개 과정이 흡사하다는 게 전문가의 평가다.

하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선박이 기울어지자 선장은 매뉴얼에 따라 해상보안청(해양경찰)에 즉시 구조 요청을 했다. 승무원들은 충격으로 선체가 뒤틀려 객실 문이 열리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승객들을 객실에서 탈출시켰다. 배가 크게 기울어서 탈출이 여의치 않자, 소방 호스를 로프 삼아 승객들부터 갑판으로 끌어올렸다. 갑판에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은 2시간 만에 헬기로 구조됐다. 승객이 구조된 이후에 승무원들이 차례로 헬기에 탔다. 끝까지 선박을 지키고 있던 선장과 1등 항해사 등 6명은 배가 계속 침수하자 구명정을 투하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들도 모두 구조돼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1987년 12월20일 필리핀 해상에서 발생한 도나파즈호 침몰사고는 사상 최악의 선박 침몰사고로 기록되어 있는데,이 사고로 무려 4,375명이 사망했다.

수도 마닐라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려는 승객들을 한 배 가득 싣고 레이테섬을 떠나 마닐라로 향하던 중에 대재앙을 맞은 것이었다.

사고는 승객들이 잠에 빠져 있던 새벽 6시30분에 8,800톤의 석유를 적재하고 있던 유조선 벡터호와 충돌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 사고로 벡터호에 실려 있던 석유가 분출되면서 벡터호와 도나파즈호는 불길에 휩쓸렸다.근처에 있던 바닷물까지 이 불바다에 휩쓸리게 되면서 온도가 급속도로 올라가. 불바다처럼 뜨거운 바다가 되면서 생지옥 같은 상황이 도래되고 말았다.

  • 대폭발이 일어나자 승무원들은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했다, 

놀란 몇몇 선원은 아무런 말도 없이 전원을 내렸다! 그야말로 암흑천지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도무지 어디로 나갈지 몰라 어둠 속에서 우왕좌왕했고 폭발과 불이 일어나자 놀라 마구 나가다가 그 와중에 밟혀 죽는 이들도 속출했다.

구명조끼가 들어 있는 라커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구명정도 제대로 없었다. 

승객들은 불타는 바다 위로 뛰어내렸으나..

기름이 붙은 바다는 그야말로... 타죽고 ..뜨거운 물에 데여서 죽고.. 

더 큰 비극은... 이 바다에는 상어가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사건 이후 상어들이 몰려와 죽은 시체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하여 수색에 나선 수색대는 총으로 상어를 쏘면서 시체들을 인양해야 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의 증언을 봐도 시체들은 화상으로 훼손이 심했고 화상입지 않아도 펄펄 끊는 물에 데여 죽은 시체가 가득했다고 한다.

살아 남은 사람은 총 4,400여명 탑승객증에서 단 24명뿐...헉...

  • 이러다보니 당시 외신들은 이런 상황에서 생존자가 있다는 게 기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 이후 발표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사고 당시 도나파즈호에는 견습선원 한 명만이 모니터를 하고 있었다. 선장은 자신의 방에서 음란 성인영화를 보고 있었고, 다른 승무원들은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벡터호는 운항 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였고 자격을 갖춘 정규직 선원조차 1명도 없었다. 배의 승선 가능 인원은 1450명이었지만 실제론 4,400여명이 타고 있었다. 해운사가 값싼 입석탑승권을 추가로 불법으로 팔았던 것이다. 원래 이 배는 1963년에 일본에서 608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배로 제조되었는데 일본 이름은 히메유리마루(ひめゆり丸)호였다.

1975년에 이 배는 결국 필리핀으로 팔렸으며, 필리핀에서 개조하면서 1,164명을 태우게 되었다. 

필리핀에서 처음 지어진 이름은 돈 술리피치오 호였는데 1979년 6월 5일,승객 1,164명을 태우고 가던 길에 화재가 일어나 반파되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1명도 죽지않고 모두 구조되었는데 경악스럽게도 이 배를 그대로 건져올려 고쳐서 도나파즈 호로 이름을 고치고 1981년부터 운항을 다시 한거였다. 운항 재개를 시작하면서 1,450명이 타게끔 또 한 번 개조했다.

사람이 이리도 많았던 건 대충 구석에 틀어박혀 잠을 자는 입석표가 무척 값이 쌌는데 비싼 비행기라든지 안전운행을 하는 다른 배보다 훨씬 쌌기에 가난한 서민들이 엄청 몰려와서 탔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사망자 대다수가 필리핀 사람들이었으며 당시 이 배를 타려다가 하도 사람이 많아서 승선을 포기해 목숨을 구한 몇몇 관광객도 있었다. 물론 여러 관광객들도 이 배에 타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2006년 이집트의 여객선 알 살람 보카치오 98호는 180도 회전한 후 물속에 가라앉아 1,000여 명의 희생자를 냈다. 이 배는 2월 2일 저녁 7시쯤 사우디아라비아의 두바항을 떠나 이집트로 가던 중이었다. 승객 1,310명과 승무원 104명, 자동차 220여 대가 실려 있었다. 출항 1시간30분 후 배 안 자동차 화물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승객들은 회항하자고 했지만 선장은 이를 무시하고 항해를 계속했다. 3~4시간 후 불길은 되살아났다 강풍과 높은 파도로 불이 배 전체로 빠르게 번졌고 폭발음에 놀란 승객들이 화재 지점과 반대편 갑판으로 몰리면서 배가 무게중심을 잃었다. 구명보트에 가장 먼저 승선한 것은 선장이었다. 구조선이 현장으로 출발한 것은 배가 침몰한 지 10시간이 지난 후였다.


*2012년 1월 이태리 크루즈선인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좌초 때도 선장이 맨 먼저 도망쳤다. 항로를 이탈해 운항하다 암초에 걸렸다. 이 사고로 승객 4200여 명 가운데 32명이 사망했다. 프란체스코 셰티노 선장은 탈출당시 배에 남아있던 승객 300여 명에 대한 직무유기죄를 적용받아 승객 1인당 약 8년형씩 총 2697년을 구형받고 재판 중이다.



선박 침몰 사고 발생시에 영국의 버큰헤이드호나,타이태닉호의  선장들은 선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려고  마지막 침몰 순간까지 남아서 장렬하게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으며,

일본의 아리아케호 선장은 매뉴얼에 따라 해상보안청에 즉시 구조 요청을 했으며,

승무원들은 충격으로 선체가 뒤틀려 객실 문이 열리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승객들을 객실에서 모두 다 안전하게 탈출시키고 나서,마지막까지도 선박을 지키고 있던 선장과 1등 항해사등 6명은 배가 계속 침수하자 구명정을 투하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들도 모두 구조돼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자,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세월호 선장 이준석이라는 인간은 이집트 여객선인 알 살람 보카치오호 선장이나 이태리 크루즈선인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선장처럼 가장 기본적인 선장으로서의 책임-배에 타고 있는 승객들의 안전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을 방기한채,본인만의 더러운 목숨을 건지고자 용렬하고도 치졸하게 제일 먼저 배에서 탈출하고,탈출후에도 선장 신분을 속이는 등 별 짓거리를 다하고 돌아 다니다가,다른 실종자 가족들이 울부짖으며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는 아비규환의 현장을 유유히 벗어나서,밤에는 해양경찰이 사는 아파트에 가서 잠을 자는 등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행위를 하고 다니는지....

선박 침몰 상황에서 적어도 선장이나 승무원들이 목숨바쳐가며 승객들을 구조하던 버큰헤이드호나 타이타닉호와는  차원이 다르다.

왜 타이태닉호나 버큰헤이드호 선장처럼 윤리의식이 강한 사람을 이렇게 큰 배의 선장으로 임명을 안 하는건지...


공교롭게도 세월호 침몰 사고는 도나파즈호 침몰사건과 여러 모로 비슷하다. 둘 다 일본에서 만들어서 오랫동안 사용했던 노후화된 일본산 배를 사들여서무리하게 개조를 했기 때문에 근원적인 취약점이 분명히 내재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선 들며,특히 세월호는 1994년부터 2012년까지 18년동안이나 일본에서 사용되어 왔던 배인데,도나파즈호는 일본에서 12년밖에 사용되지 않았던 배이므로 분명히 세월호의 구입당시 선박의 컨디션이 이미 아주 안 좋았던 상황이었을 것임이 분명한데도,승객 117명을 더 태우기 위해 무리하게 객실을 2개 층이나 더 올려 가면서 증축을 강행해서 선박 무게도 239톤이나 더 무거워 졌으므로 이같은 개조과정에서 배의 무게 중심이 높아져서 운항의 안전성에 이미 영향이  끼쳐졌을 가능성이 높게 있었으므로 여차하면 전복이 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던 차에,설상가상으로 급격하게 항로 변경을 시도하던 과정에서 결박된 화물들이 풀리면서 그 여파로 배가 서서히 기운 뒤,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더 많이 기울여지면서 좌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배가 일본에서 "나미노우에"이름으로 운항하던 동안에 기름이 새는 사고가 오래 전에 이미 1번 있었다고 하므로 기분이 영 찜찜하군요...                                               


설사,선박 자체에 내재 되어 있는 문제점은 논외로 하더라도,대처를 신속하게 잘했더라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음에도 대한민국 재난 수습체계의 총체적인 부실및 선장 및 선원들의 막가파 대처및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대한민국 정부 관리들의 미숙하기 짝이 없는,완전 후진국형의, 터무니없게 여겨질 정도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 재난 수습 능력의 부재및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 덕택에 터무니없이 사망자가 늘어난 人災로만 여겨져서 자꾸만 씁쓸한 기분이 절로 드는 잔인한 4월의 하루가 또 이렇게 속절없이 저물어 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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