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의 사도 빌립과 나다나엘 (The Apostles Philip and Nathanael from 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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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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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24-3-25>

모나미 153 볼펜과 관련된 베드로의 갈릴리 이야기를 post-script에 올립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제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빌립과 사도행전의 집사 빌립을 동일한 사람으로 잘못 쓴 것을 수정하면서 사도 빌립에 대하여 심층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 이른바 1군에 속하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2군 빌립, 나다나엘, 도마, 마태 가운데 이번 시간에는 사도 빌립과 빌립이 전도한 친구 나다나엘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성경 구절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흠정역 마제스티판(2021)에서 인용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donnafaithfellowship/223371824109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사역하셨고 빌립과 나다나엘을 비롯한 대부분의 열두 제자들도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빌립은 베드로, 안드레와 동향 출신으로 갈릴리 동쪽의 벳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신 혼인 잔치가 열렸던 갈릴리 서쪽 가나 사람입니다. 가나는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편 빌립안드레베드로의 도시인 벳새다 출신이더라.

Now Philip was of Bethsaida, the city of Andrew and Peter.

시몬 베드로디두모라 하는 도마갈릴리 가나 출신의 나다나엘세베대의 아들들과 그분의 제자들 중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었는데

There were together Simon Peter, and Thomas called Didymus, and Nathanael of Cana in Galilee, and the sons of Zebedee, and two other of his disciples.

<요한복음 1:44, 21:2, John>

https://m.blog.naver.com/immanu_el/220530944452

호수 면적이 166km2에 달하여 수원시나 안산시보다 넓어서 갈릴리 바다라고도 하는 갈릴리는 구약 성경에서 긴네렛이나 긴네롯, 신약 성경에서는 게네사렛 또는 로마의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의 이름을 따서 디베랴(Tiberias)라는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사해(Dea Sea)는 서울특별시 크기로 갈릴리 호수의 4배 정도 되지만 갈릴리처럼 담수호가 아니고 염분이 세상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호수 대신 바다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만년설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스라엘의 영산 헤르몬 산(Mount Hermon)에서 발원하여 골란 고원(Golan Heights)을 지나 중요한 식수원을 이루는 이스라엘의 젖줄입니다.

골란 고원은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과도 접경하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중동 사막 지역에서 생명과도 같은 수자원 확보국가 안보를 위해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 때 이 골란 고원을 점령하였고 교전중지 감시부대(DOF, Disengangement Observer Force)라고 하는 UN 평화 유지군이 시리아 국경 지역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골란 고원 영유권을 정식으로 승인한 바 있습니다.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휴전선 인근 지역과 비슷한 갈릴리는 예수님의 주요 활동 무대로서 예나 지금이나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위해 막대한 건축용 자재와 기술자들을 지원해 준 페니키아의 두로 왕 히람(=후람)에게 갈릴리에 있는 스무 개의 도시를 답례로 주는데 얼마나 쓸모없고 시시했는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굳고 메마른 땅"이라는 뜻의 가불(Cabul)이라고 불렀고 나중에 솔로몬에게 이 땅을 돌려주기까지 합니다.

솔로몬이 두 집 곧 의 집과 왕의 집을 건축한 기간인 이십 년이 끝날 때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wenty years, when Solomon had built the two houses, the house of the LORD, and the king's house,

(당시 두로히람솔로몬의 모든 소원대로 이미 그에게 백향목과 전나무와 금을 제공하였으므로) 그때에 솔로몬 왕이 갈릴리 땅에 있는 스무 개 도시들을 히람에게 주었는데

(Now Hiram the king of Tyre had furnished Solomon with cedar trees and fir trees, and with gold, according to all his desire,) that then king Solomon gave Hiram twenty cities in the land of Galilee.

히람두로에서 나와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도시들을 보고는 그 도시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And Hiram came out from Tyre to see the cities which Solomon had given him; and they pleased him not.

말하기를, 내 형제여, 그대가 내게 준 이 도시들이 무슨 도시들이냐? 하고 그것들을 가불의 땅이라 부르니 이날까지 그 이름이 내려오고 있느니라.

And he said, What cities are these which thou hast given me, my brother? And he called them the land of Cabul unto this day.

<열왕기상 9:10-13 흠정역, 1 Kings>

후람솔로몬에게 되돌려준 도시들 곧 그 도시들을 솔로몬이 건축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거기 거하게 하였더라.

That the cities which Huram had restored to Solomon, Solomon built them, and caused the children of Israel to dwell there.

<역대하 8:2 흠정역, 2 Chronicles>

오늘날에도 갈릴리는 이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시아파 테러조직 헤즈볼라의 로켓포가 자주 떨어지는 위험한 지대라서 에티오피아 혈통의 흑인 유대인들을 포함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성이 Solomon인 미국인들이 가끔 있는데 대부분 에티오피아 출신 흑인이에요. 제 에티오피아 친구의 휴대폰에는 Solomon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무려 30명도 넘더라고요ㅎㅎ 솔로몬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흑인 유대인들을 팔라샤(Falasha)라고 합니다. 집사 빌립에게 침례를 받은 최초의 이방인 개종자 에티오피아 내시도 팔라샤였겠지요.

https://theafricanhistory.com/3012

빌립(Philip)은 "말(horse)을 사랑한다"라는 뜻의 헬라식 이름(philos+hippos)을 가진 유대인이었습니다. 빌립은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이름이기도 했고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의 아들 빌립이 벳새다 지역을 관할하는 분봉왕이었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 흔한 남자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성경에 헤롯 왕이 여러 명 나와서 누가 누군지 헷갈리는데요, 막장 드라마 저리 가라 콩가루 헤롯 집안의 복잡한 족보는 다음 표를 참고하세요^^;

http://www.segibak.or.kr/bbs/board.php?bo_table=datas&wr_id=16

빌립은 예수님께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세무 공무원 출신 마태, 재정 담당 가룟 유다를 제치고 견적을 내게 하실 정도로 계산이 빠르고 정확한 제자였습니다. 빌립은 요즘 유행하는 MBTI 성격유형검사에서 의사결정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Thinking)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T 유형의 인물로 사료됩니다. 참고로 반대는 감정(Feeling)이 발달한 F 유형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빵을 사서 이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When Jesus then lifted up his eyes, and saw a great company come unto him, he saith unto Philip, Whence shall we buy bread, that these may eat?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친히 행하실 것을 아셨으므로 그를 시험하려 하심이더라.

And this he said to prove him: for he himself knew what he would do.

빌립이 그분께 대답하되, 그들이 각각 조금씩 받을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어치의 빵이 그들에게 충분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매

Philip answered him, Two hundred pennyworth of bread is not sufficient for them, that every one of them may take a little.

<요한복음 6:5-7, John>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 기적에서 과거 이스라엘에서는 전쟁 났을 때 싸울 수 있는 장정만 계수 했기 때문에 여자, 노인, 어린이들까지 포함하면 이만 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100년 전 우리나라에는 빵이 없었으니 그 당시엔 떡이라고 번역했겠으나, 이스라엘에는 떡이 없으므로 이제는 빵이라고 표기해야 맞겠습니다. 일 데나리온은 장정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이므로 요즘 화폐와 물가로 환산하여 근로자 하루 일당을 10만 원이라고 치고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성인 남성 약 5천 명으로부터 1인당 1만 원씩 걷었다고 합시다.

(10,000원 × 5,000명) + (100,000원 × 200데나리온)

= 50,000,000원 + 20,000,000원

= 70,000,000원

70,000,000원 ÷ 20,000명

= 3,500원

빌립의 방식 대로 계산하니까 한 사람당 3,500원, 대략 야채 김밥 한 줄이나 저렴한 햄버거 한 개 값이 나오네요. 저는 이거 계산하느라 계산기를 몇 번이나 두드렸는데 빌립은 계산기도 없던 시절 한눈에 척 보고 스캔하여 인원수를 파악하고 얼마씩 걷으면 얼마의 액수가 부족한지 수치를 예측하여 컴퓨터처럼 순식간에 견적을 뽑는 AI 저리 가라 엄청난 분석과 연산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빌립은 요즘으로 치면 MIT 공대 천재적 두뇌의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똑똑한 제자 빌립을 은근히 드러내시려고 일부러 계산을 시키셔서 성경에 기록되게 하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래 사진은 갈릴리 호수에 성지 순례를 가면 나오는 베드로 물고기와 납작한 피타 빵 도시락이라고 합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많이 잡히는 저 물고기를 베드로 물고기(St. Peter's Fish)라고 부르는데 담수어인 틸라피아(Tilapia) 종류라고 하네요. 저도 갈릴리 호수가 바라보이는 들판에 앉아서 한 번 먹어보고 싶어요.

https://m.kmib.co.kr/view_amp.asp?arcid=0012826989

https://namu.wiki/w/%EA%B0%88%EB%A6%B4%EB%9E%98%EC%95%84%ED%98%B8

빌립은 또한 증거 기반(evidence-based)과학적 사고방식을 가졌던 제자입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3년 넘게 따라다녔으면서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증주의(positivism), 합리주의(rationalism)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아셨던 예수님은 믿음이 없다고 꾸짖지 아니하시고 장장 여섯 절을 할애하여 빌립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구구절절이 설명해 주시면서,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믿으라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신앙의 조언까지 해주셨습니다.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

Philip saith unto him, Lord, shew us the Father, and it sufficeth us.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아직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는데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Jesus saith unto him, Have I been so long time with you, and yet hast thou not known me, Philip? he that hath seen me hath seen the Father; and how sayest thou then, Shew us the Father?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들은 내가 스스로 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곧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Believest thou not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n me?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I speak not of myself: but the Father that dwelleth in me, he doeth the works.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내 말을 믿으라. 그러지 못하겠거든 바로 그 일들로 인해 나를 믿으라.

Believe m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n me: or else believe me for the very works' sake.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또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He that believeth on me, the works that I do shall he do also; and greater works than these shall he do; because I go unto my Father.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And whatsoever ye shall ask in my name, that will I do, that the Father may be glorified in the Son.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If ye shall ask any thing in my name, I will do it.

<요한복음 14:8-14, John>

그뿐만 아니라,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빌립에게 부탁했을 때 자기 선에서 임의로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먼저 안드레와 의논한 뒤 예수님께 같이 가서 아뢴 것으로 미루어, 빌립은 매우 신중하고 겸손한 성격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명절에 경배하러 올라온 자들 가운데 어떤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는데

And there were certain Greeks among them that came up to worship at the feast:

바로 그 사람들이 갈릴리 벳새다 출신의 빌립에게 가서 그에게 요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하매

The same came therefore to Philip, which was of Bethsaida of Galilee, and desired him, saying, Sir, we would see Jesus.

빌립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다시 안드레빌립 예수님께 고하니라.

Philip cometh and telleth Andrew: and again Andrew and Philip tell Jesus.

<요한복음 12:20-22, John>

이렇게 철두철미하고 주도면밀한 빌립이었기에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이미 율법과 대언자들의 기록의 비교, 분석이 끝난 빌립은 나를 따르라(Follow me)는 예수님 한마디에 두 말 없이 그 자리에서 따라갑니다.

그다음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The day following Jesus would go forth into Galilee, and findeth Philip, and saith unto him, Follow me.

<요한복음 1:43, John>

예수님의 제자가 된 빌립은 바로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나다나엘(Nathanael)은 "하나님께서 주셨다" 또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요한복음 이외의 다른 세 복음서에는 바돌로매(Bartholomew)라고 나옵니다. 아람어로 바(bar)는 아들이므로 베드로의 다른 이름 "바요나 시몬"에서 바요나가 요나의 아들이듯 바돌로매는 돌로매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빌립나다나엘을 찾아서 그에게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대언자들이 기록한 분을 우리가 만났는데 그분은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니라, 하매

Philip findeth Nathanael, and saith unto him, We have found him, of whom Moses in the law, and the prophets, did write, Jesus of Nazareth, the son of Joseph.

<요한복음 1:45, John>

유유상종이라고 빌립의 절친이었을 나다나엘 역시 메시아에 대하여 심도 있게 탐구하고 조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처음에는 대단히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냅니다. 구약의 예언에 따르면 메시아는 나사렛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시고 나사렛에서 성장하셨죠.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네가 유다의 수천 가운데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에서 치리자가 될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아오리라. 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느니라.

But thou, Bethlehem Ephratah, though thou be little among the thousands of Judah, yet out of thee shall he come forth unto me that is to be ruler in Israel; whose goings forth have been from of old, from everlasting.

<미가 5:2, Micah>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거리가 서울에서 대전쯤(약 150km) 되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수도권 베들레헴을 놔두고 자기 동네인 가나 근처 북부의 시골 마을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나신 것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빌립이 결코 허튼소리 할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나다나엘은 와서 보라(Come and see)는 빌립의 권유에 미심쩍어 하면서도 일단 따라나섭니다.

나다나엘이 그에게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니 빌립이 그에게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And Nathanael said unto him, Can there any good thing come out of Nazareth? Philip saith unto him, Come and see.

<요한복음 1:46, John>

와서 보라(Come and See)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안드레와 요한으로 추정되는 최초의 두 제자를 부르실 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준비된 사람들은 결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긴 말이 필요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와서 보라, 하시더라. 그들이 가서 그분께서 거하시는 곳을 보고 그 날 그분과 함께 머물렀으니 이는 때가 열 시쯤이었기 때문이더라.

He saith unto them, Come and see. They came and saw where he dwelt, and abode with him that day: for it was about the tenth hour.

<요한복음 1:39, John>

https://m.cafe.daum.net/kor1893/M3xg/39

반신반의하며 빌립을 쫓아간 나다나엘은 초면에 예수님으로부터 간사함이 없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놀라운 칭찬을 듣게 됩니다! 거짓과 간교함이 없는 반듯한 그의 성품을 진작에 알아보신 거죠. 게다가 나다나엘이 빌립을 만나기 전에 예수님의 가시거리를 벗어나 멀리 떨어져 있던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던 것을 예수님이 벌써 알고 계셨습니다. 어안이 벙벙했을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이르시되,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하시니

Jesus saw Nathanael coming to him, and saith of him, Behold an Israelite indeed, in whom is no guile!

나다나엘이 그분께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노라, 하시므로

Nathanael saith unto him, Whence knowest thou me?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Before that Philip called thee, when thou wast under the fig tree, I saw thee.

<요한복음 1:47-48, John>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밑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의 대답으로 미루어 볼 때, 로마의 압제로부터 장차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구원자 메시아를 속히 보내달라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중보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다나엘은 MBTI에서 감각(Sensing)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S 유형이라기보다는 직관(iNtuition)을 통해 상황을 인식하는 N 유형입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이지(sight) 않는 통찰력(insight)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한눈에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을 단번에 스승으로 모십니다.

나다나엘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이시니이다, 하매

Nathanael answered and saith unto him, Rabbi, thou art the Son of God; thou art the King of Israel.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네게 말하였으므로 네가 믿느냐? 네가 이것들보다 더 큰일들을 보리라, 하시며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Because I said unto thee, I saw thee under the fig tree, believest thou? thou shalt see greater things than these.

<요한복음 1:49-50, John>

이스라엘은 야곱의 개명 후 이름인데 예전 이름인 야곱은 "속이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고 교활한 외삼촌 라반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축적할 정도로 잔꾀와 잔머리의 끝판왕이었지요. 그랬던 야곱이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 변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늘 사다리 환상을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도 언급하십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는 너희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And he saith unto him,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Hereafter ye shall see heaven open,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upon the Son of man.

<요한복음 1:51, John>

그가 꿈을 꾸었는데, 보라, 사다리가 땅 위에 세워졌고 그것의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으며, 보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더라.

And he dreamed, and behold a ladder set up on the earth, and the top of it reached to heaven: and behol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it.

<창세기 28:12, Genesis>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200년간의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키시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혹독하게 단련하시면서 노예 근성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여러 주변 강대국들의 통치를 당하면서 열등감과 자기 비하, 강자에게 비굴할 정도로 약하지만 약자에게는 무자비하게 강한 식민지 근성(colonial mentality)이 몸에 배었을 것입니다.

피지배 민족으로 살아도 등따시고 배부르면 그만인 대부분의 사람들, 폭력으로 저항하며 이스라엘의 독립을 이루려던 열심당원들(Zealot),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며 사리사욕을 위해 동족들을 등쳐먹는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로 가득했으나, 의리와 지조가 있는 정통 유대인이었던 나다나엘은 율법의 정신을 지키면서도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확신하고 간구한 이상주의적 애국자였던 것입니다.

조용한 사도 나다나엘은 성경에서 눈에 띄게 부각되지 않지만, 요한복음 1장에 나왔던 나다나엘의 이름이 마지막 장인 21장에 다시 나옴으로써 그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제자로서 스승의 곁을 지키지 못하고 절망, 공포, 자괴감에 쌓여 갈릴리로 돌아가 과거의 생업을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다나엘과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 사도직을 복원시켜 주십니다.

이 일들 뒤에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자기를 보이시되 이렇게 자기를 보이시니라.

After these things Jesus shewed himself again to the disciples at the sea of Tiberias; and on this wise shewed he himself.

시몬 베드로디두모라 하는 도마갈릴리 가나 출신의 나다나엘세베대의 아들들과 그분의 제자들 중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었는데

There were together Simon Peter, and Thomas called Didymus, and Nathanael of Cana in Galilee, and the sons of Zebedee, and two other of his disciples.

<요한복음 21:1-2, John>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데(士爲知己者死), 자기를 첫눈에 알아봐 주셨고 비록 실패하고 좌절했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예수님을 뵙고 얼마나 감개무량했을까요? 실제로 갈릴리에서 갈보리까지 예수님과 함께 사역했던 단짝 친구 빌립과 나다나엘은 그 이후 사도의 절개를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각각 터키 아르메니아 지방에서 장렬히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은 전쟁 때문에 기약이 없지만 언젠가 이스라엘 Holy Land로 성지 순례를 갈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갈릴리 바다의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상상하며 우리말로는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로 번역된 The Stranger of Galilee라는 찬송가를 배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불러보고 싶습니다.

https://m.kmib.co.kr/view_amp.asp?arcid=0012826989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1.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어느 바닷가 거닐 때

그 갈릴리 오신 이 따르는 많은 무리를 보았네

나 그때에 확실히 맹인이 눈을 뜨는 것 보았네

그 갈릴리 오신 이 능력이 나를 놀라게 하였네

2. 그 사랑의 눈빛과 음성을 나는 잊을 수 없겠네

그 갈릴리 오신 이 그때에 이 죄인을 향하여

못 자국 난 그 손과 옆구리 보이시면서 하신 말

네 지은 죄 사했다 하실 때 나의 죄짐이 풀렸네

3. 그 사나운 바다를 향하여 잔잔하라고 명했네

그 파도가 주 말씀 따라서 아주 잔잔케 되었네

그 잔잔한 바다의 평온함 나의 맘속에 남아서

그 갈릴리 오신 이 의지할 참된 믿음이 되었네

4.이 세상의 무거운 짐진 자 모두 주 앞에 나오라

그 놀라운 은혜를 받아서 맘의 평안을 얻으라

나 주께서 명하신 복음을 힘써 전하며 살 동안

그 갈릴리 오신 이 내 맘에 항상 계시기 원하네

(후렴)

내가 영원히 사모할 주님

참 사랑과 은혜 넘쳐

나 뵈옵고 그 후로부터

내 구주로 섬겼네

에티오피아 팔라샤 흑인 유대인은 아니지만 이 곡을 아프리카 케냐 성가대가 부르는 아름다운 하모니로 감상해 보세요~

https://youtu.be/xGje3db4AgY?si=UWgabnIE69FpxAAM

P.S. 국민 볼펜 모나미 153에 대한 제 일상 블로그입니다.

https://m.blog.naver.com/donnastorysong/223394480424

Do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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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과 경건한 교제를 나누며 성경 말씀과 중보 기도를 통해 거룩한 한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이루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