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를 받다 (I got bapt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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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7. 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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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이었던 지난 주일 3월 31일에 올해 2월 초 정동수 목사님의 성경 강연회가 개최되었던 Sunrise Baptist Church에서 저와 딸이 침례(baptism)를 받았습니다. 강연회 셋째 날 침례의 성경적 참된 의미에 대해 배운 후 그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서 침례 받고 싶다고 부탁을 드렸더니, 교인이 아닌데도 아무 조건 없이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장로교회에서 나서 자란 장로교인(Presbyterian)으로서 청소년 시절에 물을 머리에 뿌리는(sprinkling) 형식의 세례는 받았지만, 교단별 교리 논쟁을 떠나 예수님께서 받으신 방법 그대로 물 속에 푹 잠기는(soaking) 침례를 받아보고 싶었거든요.

https://m.blog.naver.com/donnafaithfellowship/223371824109

교회에서 다른 침례 희망자들의 신청을 받아 부활절에 다 함께 침례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성가대석 위로 십자가가 보이는 가운데 동그란 장소가 2층의 발코니와 연결되는 침례탕(baptism pool)입니다.

온통 노란 분필 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꽃가루 시즌이라 요즘 앨러지로 엄청 고생을 하고 있어요. 게다가 하필 지난주는 1사분기를 마감하는 가장 바쁜 주라 일이 너무 많아서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재택근무를 해야 했거든요. 주일 아침에 일어나니까 자다가 무의식중에 간지러워서 눈을 비볐는지 눈이 퉁퉁 붓고 충혈돼서 앨러지 알약과 작년에 한국 갔을 때 안과에서 처방받은 안약을 급하게 쳤더니 다행히 눈은 떠지더라고요.

그래도 두근두근 콩닥콩닥 설렘과 떨림으로 부활절과 침례식을 기대하며 고난주간을 보내는 동안 여러 가지 감사한 일들이 많았답니다. 목사님께서 준비물, 복장 등의 지시 사항이 들어있는 이메일을 미리 보내주셨어요. 속이 비치지 않는 두꺼운 흰색의 침례복(baptismal robe)을 겉에 입지만 안에 반팔 티와 반바지 등 꼭 단정하게 입으라고 강조하시더라고요(modesty). 미국인들 중에는 침례를 받으러 오면서도 야하게 입고 오는 사람이 있나 봐요ㅋㅋ

https://m.blog.naver.com/donnastorysong/223400271972

드디어 2024년 부활절 아침, 침례 준비를 위해 30분 일찍 오라고 해서 10시까지 목사님 사무실에 갔더니 어린 꼬마 여자아이와 그 아버지가 먼저 와 있더라고요. 담임 목사님이신 Pastor Don은 저와 제 딸 그리고 그 소녀에게 침례를 해주시고 다른 5명의 라틴계 성도들은 담당 목사님이 스페인어로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총 8명이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교회에서는 한인 사역뿐만 아니라 Hispanic ministry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예배는 체육관이 있는 별관에 위치한 예배실에서 드리고, 40명 정도 모이는 스페인어 성도들은 부속 건물을 통째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간단한 교육을 받은 후 2층 대기실로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고 침례탕으로 갑니다. 침례탕에는 한꺼번에 5-6명 정도 들어갈 수 있어서 가족 단위로도 가능하겠더라고요. 계단과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따뜻한 물로 채워져 있어요. 내부에는 예배당에서 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마이크 시설도 갖추어져 있어요.

오늘은 부활절이라 미국 성도들이 많이 참석했고 Korean, Spanish 회중들도 본당에서 연합 예배를 드려서 빈자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나갈 때 보니까 특히 보행 보조기(walker)를 짚고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으시더라고요. 부활절, 어머니날, 성탄절 등에는 자녀들이 요양원에 계시는 부모님들을 모시고 나와 온가족이 같이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오늘 침례 순위 1번이에요. 목사님이 코로나에 걸린 이후 기억력이 나빠지셔서 이름을 잘 못 외우신대요. 그래서 목사님이 호명하지 않고 제가 성도들 앞에서 제 이름을 영어와 한국어로 또박또박 발표하고 나서 목사님의 침례사가 이어집니다.

In obedience to the command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and upon your public profession of faith in Him, I baptize you, my sister in Christ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buried with Christ in baptism, raised up to walk in newness of life.

우리의 주인이시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에 대한 당신의 공개적인 신앙 고백 위에, 나는 침례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도록 일으켜진, 그리스도 안에서 자매인 당신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줍니다.

Baptize의 그리스어인 βαπτίζω(baptizo)는 dip, plunge 또는 immerse의 뜻으로 물속에 잠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속의 원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으신 것이 아니라(은유적으로 cleanse나 wash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므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maundy, 즉 세족식의 세() 자와 차별화하여 세례가 아닌 잠길 침() 자의 침례(浸禮)가 성경적으로 올바른 번역입니다.

침례의 과정을 통해 예수님이 돌아가시고(death) 묻히셨다가(burial) 다시 살아나신(resurrection) 것을 아래 그림처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머리에 물을 뿌리거나(sprinkle) 붓는(pour) 형태로 이루어지는 세례로는 이 내용이 시각적으로(visualization) 절대 표현되지 않습니다.

스틸컷으로 다시 보시겠습니다.

다음으로 딸이 들어와서 저의 침례 장면을 바라봅니다.

제 침례가 끝난 후 딸 차례입니다.

침례를 마친 후 퇴장합니다.

우리가 나간 후 아홉 살짜리 꼬마 L이 들어옵니다. 안경을 벗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해서 안경을 쓴 채로 침례를 받기로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L은 작년 가을에 예수님을 개인의 주인과 구원자로(personal Lord and Savior) 믿고 따르기로 결심했으며 오늘은 단지 이 아이의 결단을 모든 성도들 앞에서 공표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L과 함께 내려와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세대는 다르지만 침례 동기(baptism alumni) 친구라고 하면서 깔깔 웃었어요ㅎㅎ 타월로 몸을 감싸고 나왔지만 물에 흠뻑 젖어서 오들오들 춥더라고요. 머리를 말릴 수 있는 헤어드라이어도 비치되어 있었으나 침례의 감동을 계속 느끼고 싶어 머리의 물기만 대충 닦고 축축한 채로 예배당으로 들어갔어요.

곧이어 스페인어 사역 담당 목사님인 Pastor Jesus가 히스패닉 성도들의 침례를 진행하셨습니다. 남미 출신 남자들 중에 Jesus란 이름이 많은데 "지저스"가 아니고 "헤이수스"라고 발음해요.

어떤 부부

안경 쓴 자매

멕시코에서 두 달 전에 왔다는 형제

이 자매는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 목사님을 비롯하여 이상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서 침례 받으면서 울더라고요.

이 자매처럼 우리도 구원의 감격에 울었어야 하는데 너무 신나게 받았나 싶어서 반성이 좀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90% 이상이 백인인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침례 받은 사람들은 흑인 1명, 동양인 2명, 히스패닉 5명으로 백인은 하나도 없었어요. 미국 교회들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9세 어린이의 침례를 지켜보면서 유아세례(infant baptism)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 나이는 되어야 본인의 결단으로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가 부모의 믿음으로 세례를 받으면 우리 아기는 주님의 선택받은 자녀라는 부모의 정신 승리 이외에 무슨 유익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백일 전에 유아세례 받게 해야 한다며 붓기도 안 빠진 몸으로 아기 안고 교회 갔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유아세례를 하면서 부모가 아기를 믿음으로 잘 키우겠다고 성도들 앞에서 다짐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문제는 아이가 자라서 입교(confirmation)만 하게 되면 스스로의 결단으로 침례나 소위 약식 침례라고 하는 세례조차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쳐버리는 데 있습니다.

저는 몇 학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중학교 때 장로교회(통합)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수십 명이 두 줄로 서서 한 줄은 담임 목사님, 다른 한 줄은 부목사님께 받았는데 저는 부목사님 줄이라서 세례 주신 목사님의 성함도 기억이 안 나요. 세례 증서에는 담임 목사님 성함만 쓰여있거든요.

그래도 세례 받을 때 머리에서부터 물이 뚝뚝 흘러 이마를 타고 내려왔던 기억은 어렴풋이 있어요. 그리고 제 친구가 세례식 전 날 학교 매점에서 바나나킥 과자를 사주며 축하한다고 했던 기억은 선명하게 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이 들면 누구나 교회에서 으레 받는 줄로 알았지 축하받을 일인지 전혀 몰랐답니다.

딸은 장로교회(고신)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는데 입교할 나이가 되자 아기가 뭘 아냐며 자기가 유아세례 받은 것은 무효라고 하면서 정식으로 다시 세례를 받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자기는 Calvinist 장로교 목사님 밑에서는 절대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거부를 하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John Calvin이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를 펼칠 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했다고 배웠대요. 미국에서는 World History 시간에 유럽의 역사를 자세하게 배우는 편인데 수업 중에 아마 칼빈의 공과 과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다룬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2년 반 동안 감리교회를 다녔을 때 인상이 좋았대서 그럼 이번에는 감리교와 결이 비슷한 성결교를 한 번 다녀보기로 했어요. 마침 집 근처 차로 5분 거리에 한창 부흥하기 시작한 한인 성결교회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딸은 그 교회에서 고등학교 시절 세례를 받았어요. 그러니까 이번이 세 번째인 셈이에요. 어쩌다 유아세례, 세례, 침례 종류별로 다 받아보네요.

어떤 분들은 성령 침례가 중요하지 물 침례가 무슨 소용이냐고 하시더라고요. 물로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거나 구원을 받았으면 반드시 물로 침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나의 주인(Lord)이시요 구원자(Savior)라는 개인의 신앙 고백을 본인 스스로의 결단으로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선포하는 시간이 일생에 한 번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비유를 하자면, 침례는 결혼식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wedding ceremony), 세례는 결혼식은 생략하고 혼인신고만 하는 것(marriage certificate), 유아세례는 혼인신고도 안 하고 사실혼으로 사는 것(common-law marriage)입니다.

대부분의 팬데믹 커플들처럼 정식으로 결혼식 안 하고 혼인신고만 해도 법적인 부부이며 심지어 혼인신고를 안 했어도 오랫동안 부부로 살았다는 물증만 있으면 배우자로서의 법적 권리를 제한적으로나마 보장받을 수 있지만, 조촐하게라도 결혼식을 치러서 하객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게 해줘야 부모의 도리지 왜 귀한 자식을 혼인신고만 시키거나 사실혼으로 살게 하나요? 유아세례만 받으신 분들이나 자녀의 유아세례를 앞두고 계신 부모님들은 심각하게 고민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침례교회나 기하성(여의도순복음교회) 산하 교회가 아니면 침례를 받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저도 미국 교회니까 해줬지 한인 교회 같으면 아무리 침례교회라도 자기 교회 등록 교인 아니라고 어림도 없었을 거예요. 게다가 국내의 침례교회들 중에는 구원파가 많으니까 잘 선별하셔야 합니다.

실내보다 강에서 침례를 받으면 현장감이 있어서 좋겠으나 다음 사진은 제 주치의 선생님이 아프리카 케냐에 의료 선교 가서 세례를 주신 장면인데 저라면 저런 더러운 물에는 도저히 못 들어갈 것 같아요. 위생도 위생이지만 갑자기 악어나 피라냐가 나타나면 어떡해요^^;; 그냥 깨끗하고 따뜻한 수돗물 속에 들어가 실내에서 침례를 받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부활절 설교가 끝나고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이 있었습니다. 오늘 주의 만찬이 있는지 몰랐는데 저의 침례를 목격한 증인이며 축하해 준 성도들과 함께 주의 만찬까지 나누게 되다니 뜻밖의 선물이었습니다. 마치 결혼 피로연까지 베풀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의 만찬에 사용되는 wine무알콜 포도즙입니다. 예배 마치고 목사님께 다시 한 번 확인차 여쭤보니까 분명히 grape juice라고 하셨습니다. 빵도 효모나 베이킹파우더로 부풀리지 않은 얇고 바사삭 잘 부서지는 wafer인데 일본식 영어로 웨하스라고 하는 바로 그 과자입니다. 그러나 크림 같은 것은 들어있지 않고요. 팬데믹 이후 이렇게 개별 포장된 wine과 wafer로 바꿨다고 합니다.

왜 성찬이나 성만찬 대신 주의 만찬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그리고 주의 만찬에서는 왜 포도주가 아니라 무알콜 포도즙을 마셔야 하는지는 다음 영상들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0m7dc9Ua_Bo?si=roRbH_03G7oVp_pa (7분)

젖을까 봐 예배를 다 마치고 찾아온 침례증입니다. 제 인생에서 여태까지 받은 그 어떤 상장이나 증서보다 소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가 다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Know ye not, that so many of us as were baptized into Jesus Christ were baptized into his death?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에 의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것같이 그렇게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Therefore we are buried with him by baptism into death: that like as Christ was raised up from the dead by the glory of the Father, even so we also should walk in newness of life.

<로마서 6:3-4 흠정역, Romans KJB>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두 가지 규례인 주의 만찬침례를 오늘 동시에 지키면서 새롭게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찢기신 살과 피를 눈으로 보고(시각), 혀와 코로 빵과 와인을 음미하고(미각/후각), 물의 찰랑거리는 소리와 침례사를 들으며(청각),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나오는 것을 피부로 느껴서(촉각), 마음과 생각뿐만 아니라 오감을 통해 온몸으로 경험함으로써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오래오래 간직하게 하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해 찢긴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brake it, and said, Take, eat: this is my body, which is broken for you: this do in remembrance of me.

저녁 식사 뒤에 또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잔을 집으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이니 너희가 그것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셨느니라.

After the same manner also he took the cup, when he had supped, saying, This cup is the new testament in my blood: this do ye, as oft as ye drink it, in remembrance of me.

<고린도전서 11:24-25 흠정역, Corinthians KJB>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아들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Go ye therefore, and teach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Ghost: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Teaching them to observe all things whatsoever I have commanded you: and, lo, I am with you alway, even unto the end of the world. Amen.

<마태복음 28:19-20 흠정역, Matthew KJB>

마지막으로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로 저의 침례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이 곡은 1893년에 미국의 다니엘 휘틀(Daniel Webster Whittle, 1840-1901)이 작사하고 전도자 무디의 며느리였던 그분의 딸이 작곡한 찬송가입니다. 다니엘 휘틀은 남북전쟁에 참가하여 오른팔을 잃을 정도의 큰 부상을 입어서 정말로 죽을 고비를 넘기셨던 분이더라고요.

가사 중에 반복해서 나오는 "언제나"는 영어로 Moment by Moment인데 "언제나"와 어감이 약간 다른 "순간순간" 또는 "매 순간"입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오늘의 감격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1.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2. 맘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네

3.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4. 내 몸의 약함을 아시는 주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괴로운 날이나 기쁜 때나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네

(후렴)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갈라디아서 2:20 흠정역, Galatians KJB>

https://youtu.be/hJBe4lKU5iY?si=daUfh0MGsvGE-oKt

Do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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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과 경건한 교제를 나누며 성경 말씀과 중보 기도를 통해 거룩한 한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이루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