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11 – 할아버지 그리고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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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1979년, 작은아버지의 부모 초청 이민으로 미국으로 이주하셨다.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이주하시기전, 나는 어릴 때 할아버지 방에서 함께 잔 기억이 많다.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할아버지는 늘 주머니에 차고 다니시던 포켓나이프로 사과를 깎아 나에게 주시곤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포켓나이프는 제대로 씻지도 않으셔서 칼날에는 늘 시커먼 때가 끼어 있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할아버지가 깎아 주시는 사과를 맛있게 먹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잠자리에 들면, 할아버지는 공자왈 맹자왈 하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세상 사는 이야기, 사람 사는 도리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무척 귀여워해 주셨다.
할아버지는 술을 무척 좋아하셨고, 담배도 아주 많이 피우셨다.
1970년대에는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늘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셨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할아버지의 담배 연기를 그대로 마시며 지냈다.
1979년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가신 후, 우리 집에서는 담배 연기가 사라졌다.
아버지는 원래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기 때문에 집 안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었다.
그로부터 6년 후 1985년 11월에, 우리 가족은 작은아버지의 형제 초청 이민으로 미국에 오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 우리는 다시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바로 할아버지의 담배 연기였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집 안에서 담배를 많이 피우셨다.
한국에 계실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담배 냄새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함께 생활하면서는 도저히 참기 힘들게 느껴졌다.
6년이라는 시간의 벽이 할아버지와 나 사이를 가로 막고 있었다.
6년이라는 시간은 나를 귀엽고 착한 어린 초등학교 어린아이에서 할아버지에게 짜증내고 소리 지르는 놈, 고등학생으로 바꾸어 놓았다.
부모님은 할아버지께 담배를 밖에서 피우시라고 조심스럽게 권유드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방이나 거실에서 담배를 피우셨다.
나는 할아버지와 거의 매일 다투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거실 가득 찬 담배 연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도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거실에서 신문을 보시며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폭발하고 말았다.
할아버지와 소리를 지르며 크게 싸웠다.
얼마나 말다툼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큰소리로 말다툼 하는 중 갑자기, 할아버지가 나에게 소리지르셨다.
“더럽고 치사해서 이젠 담배 안 핀다.”
그리고는 할아버지는 그대로 집 밖으로 나가 버리셨다.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그날 이후 정말로 담배를 끊으셨다.
하루아침에, 말 그대로 천지개벽 같은 일이었다.
수십 년 동안 매일 피우시던 담배를 단번에 끊어 버리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 후 1년 동안 담배를 피우시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회 모임에 다녀오신 후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셨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 한 분이 “몇 년 더 오래 살겠다고 이 맛있는 담배를 끊느냐”고 놀리셨다고 한다.
다행히도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담배를 많이 피우시지는 못하셨다.
담배 피우시는 양도 크게 줄었다.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다시 담배를 완전히 끊으셨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날의 싸움은 단지 담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6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할아버지와 나는 끝내 넘지 못했다.
서로 다른 세대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집에서 다시 함께 살게 되면서,
그 낯선 간극이 부딪혀 만들어낸 갈등이었을 것이다.
평생 손에서 놓지 못하던 담배를, 건방진 손자놈과 크게 소리 지르며 말다툼한 뒤 내려놓으셨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내가 얼마나 버릇없는 놈이었을까.
한국에 계실 때 매일 밤 공자왈 맹자왈 하며 가르쳐 주시고, 귀엽게 챙겨 주시던 그 사랑스러웠던 어린 손자가 어느 순간 훌쩍 자라, 소리부터 지르는 놈으로 변해 있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께서도 많이 당황하셨을 것이고, 아마 본인 스스로도 많이 부끄러우셨을 것 같다.
언젠가 나도 하늘나라에 가게 될것이다.
만약 내가 무엇 하나를 하늘나라로 가지고 갈 수 있다면, 말보로 담배 한갑을 하늘나라에 가져 가고 싶다.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말보로 담배 한 갑을 꼭 드리고 싶다.
이제 편안하게 피우시라고.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윤씨 집안 씨앗을 바꾸었다고.
할아버지가 바라시는대로 증손자 두 놈이 키가 커다고.
공인회계사 윤종연
Jong Yoon, C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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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살찌자님의 댓글
살찌자 작성일
근께.. 그렇게 본인을 귀여워하고 사랑해주시던 할배 건강 걱정되서 담배 끊으라고한게 아니고
자기가 담배연기 싫어서 소리 꽥꽥 지르고 어르신한테 대들었다고? 억세게 싸가지없는놈이셨네요?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