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씨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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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오늘 하루는 분명 다르다.
같은 곳에서 일어났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도
내가 그것을 ‘다르다’고 느낀다.
그 감각 자체가 다르다.
가방 안에 든 책을 살며시 바라본다.
이 책이 나에게 온 순간부터,
무언가 시작된 게 아닐까?
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감정과 경험에 지배받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이제는 알게 된 어떤 것’이 있으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어제와 똑같았다.
“아냐. 나, 변한 거 없잖아…?”
내 마음 안에서 두려움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고개를 든다.
“누군가,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해줘...”
하지만 그 외침은 내 안에서만 메아리친다.
아무도 듣지 못한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 적막한 틈을 메우려
다시 책을 펼친다.
한 줄 한 줄,
그때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그었던 문장들을 다시 훑는다.
무언가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그러나 동시에, 믿고 싶은 마음에.
길을 걷는다.
한 발, 또 한 발.
“방금 지나간 저 사람, 표정이 조금 이상하지 않았어?”
갑자기 마음속에서 다시 시작되는 불협화음.
“혹시 내가 뭔가 잘못했나?”
“아니면 애초에 그 생각 자체가 착각이었던 걸까?”
조금 전까지 ‘신호’라 믿었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무의미한 잡음으로 전락한다.

책을 던져버린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이런 흐름이 처음은 아니다.
무언가 ‘알 것 같다’는 순간,
그 알음은 꼭 내 본모습을 다시 끌어낸다.
예전에는 그래도 일주일, 한 달은 갔는데
이제는 하루도 안 간다.
정보는 넘치고, 감정은 바쁘고, 나는 무뎌진다.
어쩌면 나는 정보가 아닌
‘정보를 소모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감정은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릴까?
나는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혹시 이 모든 게 정보라면 어떨까?”
내 삶이 아니라,
정보의 관점에서 바라본 삶은 어떤 모습일까?
0과 1의 배열만이 전부인 세상.
그 속에는 사랑도, 슬픔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오늘 느낀 이 감정은 무엇일까?
정보는 퍼지기 원한다.
그렇다면 잘 퍼지기 위한 전략은?
나는 바이러스를 떠올린다.
자신의 공격성을 낮춤으로써 더 멀리 퍼져나가는 존재.
왜 더 약해져야 더 멀리 갈 수 있는 걸까?
그것이 정보의 본능이라면—
그렇다면, 내가 오늘 느낀 이 작고 복잡한 감정은
정보를 퍼뜨리기 위한 ‘희생’일까?
그리고 문득
‘엔트로피’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열역학의 제2법칙.
모든 것은 무질서로 향한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못하는 이유.
기억을 지워도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 이유.
그렇다면, 나는…
엘리베이터 속 나를 떠올린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 모습.
그것도 정보였을까?
만약 그때, 마음에 들었던 모습과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습을 충돌시킨다면—
폭발이 일어날까?

그 에너지가 나를 없애버릴 정도라면?
나는 흔들린다.
정체성을 잃은 존재들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아, 그건 아니겠어…”
그러나,
왜 ‘폭발할 거다’고 생각한 거지?
어쩌면, 두 모순이 만났을 때
폭발하지 않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나는 책상을 두들긴다.
의식과 무의식이 박자를 맞추는 듯한 리듬.
두들기다, 두들기다, 어느 순간—
“팍”
멈춘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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