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회처럼 날로 먹을 순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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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6개월 플랜.
1년 플랜.
지금은 수익이 없지만,
곧 수익이 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다짐.
노트엔 누구나 쓸 법한 말들이
그럴듯하게 줄지어 있다.
커서를 아래로 내리자
작년에 적었던 플랜이 보인다.
거의 비슷하다.
“올해는 달라.”
나는 되뇌어보지만,
그 말이 허공에 맴도는 느낌이다.
성과가 또 없으면 어쩌지?
주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줄에 묶인 사람처럼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다.

결국 작년 플랜을 열어본다.
‘도대체 뭐가 달랐을까?’
그러나 충격적으로도,
거의 똑같다.
달라진 건 디테일뿐.
그보다 중요한 건,
그걸 실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럴듯한 말은 늘어놓았지만
내가 직접 발로 뛴 적은 없었다.
AI에게 시키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안 해본 건
무엇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누군가가 해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아무도 행동하지 않았다.
그제야 문득 든 생각,
이건 나의 ‘성격’일지도 모른다.
눈에 띄길 바라면서도
눈에 띄는 짓은 하지 않으려 한다.
마치,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카메라가 계속 자신을 비춰줄 거라는
만화 주인공처럼.
그러다 깨달았다.
내 인생 카메라는 나만 비추지만,
다른 사람들의 인생 카메라도
그들 자신만을 찍고 있다는 것.
우리는 각자의 화면 속에서
자기 자신만을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우리는 외면 받고 있다고 느낀다.
왜 그런 오해를 할까?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현실을
왜 그렇게 외면하고 싶을까?
어쩌면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는
어디선가 들은 말처럼,
연결되어 있던 감각을
잃어버려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였던 존재라면
분리된 지금에도 편해야 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이렇게 불편한 걸까?
그런 설명으로는
내 지금 이 기분이 납득되지 않는다.
반대로,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건 그 나름대로
너무 많은 걸 증명해야 하니까.
결국 나는,
계속 같은 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었던 것이다.
행동은 하지 않은 채
생각만 복잡하게 굴리고,
어렵고 무거운 건
누가 대신 해주길 바라고.
나는 손 안 대고 코 풀려 했고,
인생이 알아서 굴러가길 원했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안다.
하지만 노력하라고 다그치고 싶지도 않다.
그 방식은 이미,
수없이 실패해봤으니까.
그러자, 문득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것을 느꼈다.
나는 어깨에 힘을 툭 빼며,
어쩌면 이것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행동을 ‘쉽게’ 만드는 것.
부담 없이,
힘 빼고,
자연스럽게.
골프 스윙처럼,
손에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제대로 안 된다.
힘을 뺀 사람이 고수라고 한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꼭 이뤄야 한다고 꽉 쥔 손을 놓을 때,
어쩌면
그 순간부터 모든 게 풀릴 수도 있다.
나는 조용히,
플래너를 저장하지 않고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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