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 받고 싶지 않아 내린 선택은 떨어지는 낙엽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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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리는 무수한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제 생각을 담은 글을 작성해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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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끓여 나온
우거지 갈비탕 속 갈비대 개수를 세고 있는데,
앞에 앉은 형이 툭 말을 던진다.
“박지성 vs 손흥민. 누가 더 레전드야?”
나는 여전히 갈비대에 집중하며
딱히 대답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 침묵이 선택을 강요한다는 걸
이미 분위기로 알아차렸다.
“음… 둘 다 대단하지만,
그래도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라는 건,
박이 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형의 표정이 시큰둥하다.
“그래도 임팩트는 손이지. 월드클래스니까.”
뭐… 그럴 수도 있지.
난 다시 갈비탕을 후후 불어 한 숟갈 뜬다.
된장의 구수한 맛이 입 안을 맴돈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른다.
우리는 왜 이렇게 늘 선택하려고 할까.
혹은 선택하길 강요받는 걸까.

기호 1번, 2번, 3번 중에
하나를 꼭 고르라는 반장 선거부터 시작해서
무언가를 “좋아해야만” 하고,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문화.
어릴 땐 반장 뽑히면
세상이 내 것인 줄 알았고,
떨어지면 울며 엄마 품에 안기기도 했지.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다.
대단한 것 같았던 선택도,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다.
그때 인정받았다고
계속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그 선택 기준도
사실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정해졌던 것.
근데 웃긴 건,
내가 뽑힐 땐
“내가 뭔가 특별해서” 그런 줄 안다.
나를 뽑을 땐 대충,
나를 뽑힐 땐 운명처럼—
우리는 그렇게 이중적인 착각 속에 산다.
왜냐면,
우린 언제나 특별하고 싶으니까.
어제 들은 수업 내용이 생각난다.
“우리는 경험한 거의 모든 것을 잊는다.
그리고 아주 강렬하거나,
특이하거나,
의미를 부여한 일부만 기억한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이 갈비탕,
나중에 기억날 땐 그냥
“형이랑 밥 먹은 날”로
단순하게 뭉개질 것이다.
삼킨 횟수?
먹은 반찬?
그건 이미 흐릿하다.
기억은 그렇게
왜곡되고, 축소되고, 재구성된다.
그리고 그 왜곡된 기억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했다”고 믿는
근거가 된다.
“내가 이 길을 선택했어.”

사실은 그냥
남은 옵션 중 가장 낫다고 느낀 것일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일단 선택하면,
그걸 ‘스토리’로 만들어야 하니까.
우리의 기억 작가가
스토리라인을 설계하고,
배우는 그걸 믿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변하기가 어렵다.
작가는 배우에게 “이건 너의 이야기야”라고 속삭이고,
배우는 자신이 아직도 리허설 중인지
이미 무대 위에 올라온 건지 구분하지 못한 채
계속 그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납득한다.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그 편이 더 편하니까.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갈비대 개수를 다시 한 번 세본다.
1, 2, 3...
그래, 이건 확실히 기억해두자.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선택도, 기억도
내가 한다는 착각 정도는 누릴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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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접니다님의 댓글
접니다 작성일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현우sb님의 댓글의 댓글
현우sb 작성일댓글 감사드립니다! 하루 마무리 잘하세요!

앙증이님의 댓글
앙증이 작성일
바쁜 하루를 보내는 중 잠시 쉬었다 갈수 있어서 좋았고 생각할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