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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종을 누르니 나오는 너, 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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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우sb
댓글 0건 조회 497회 작성일 25-06-0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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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냥 제 생각이 담긴 저의 글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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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여긴 어디지?”

눈을 뜨자,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푸르른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새파란 하늘,

맑은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온다.

서울에서 이렇게 숨 쉬어본 게… 언제였더라.


걷다 보니, 나무 벤치와 골목의 향기가 낯설지 않다.

아— 여긴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이다.

초인종을 누르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익숙한 목소리,

“누구세요?”

문이 살짝 열리며, 오래 그리워했던 얼굴이 비친다.

“오, 우리 손자 왔구나.”


나는 목구멍을 꾹 눌러 간신히 웃음을 지어낸다.

“네,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는 주방으로 걸음을 옮기시고,

나는 오래된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는다.

하얀 천장을 바라본다.

이게 꿈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시간이 꿈이었을까.

그때, 할머니가 알록달록한 컵을 내민다.

오렌지 주스.

입에 대자, 잊고 지냈던 향이 폭발하듯 퍼진다.

나는 벌컥벌컥 들이킨 후,

입술에 남은 주스를 무심코 핥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동자는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이해하고 있었다.

“더 먹을 거 있어.”

그 말과 함께 다시 주방으로 사라지는 뒷모습.

잠시만, 내 곁에 더 있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삶은 밤을 정성스레 까서 내어주시고,

“필요할 때 써,” 하며 지폐를 꺼내 드신다.

나는 지폐에서 눈을 피한 채,

할머니가 건네줄 때까지 딴청을 피운다.

나의 몸은 여전히 예전과 똑같이 반응하는 구나.

지폐를 건네받으며 조용히 말한다.

“감사합니다”

그 순간,

할머니가 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안 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지만,

어지러움은 나를 삼킨다.

결국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은 방.

소리 없는 울음이 허용된 유일한 공간.

사진 속 할머니는 여전히 그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이제 어떤 발걸음도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

밀려오는 공허감.


죽음은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던 걸까.

처음 맞이한 이별에

속이 뒤틀리듯 구역질이 올라온다.

이건 삶에 대한 환멸일까,

아니면 살아 있다는 반응일까.

나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제 그만 보여줘…”


하지만 의지는 무시된 채,

또다시 어디론가 떠밀린다.

눈을 뜨면 도서관이다.

기말고사 기간인 듯 펼쳐진 책들.

친구가 날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책을 보는 척한다.

그 친구는 책을 찢을 듯한 눈으로 읽고 있다.

자료도, 개념도, 허점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도 그랬었지.


성공이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

잠시 바람을 쐬러 도서관 밖으로 나온다.

한 커플이 햇빛 아래 다정히 웃고 있다.

그들의 존재가 이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나는 그들을 향해

이상한 감정을 품는다.

순수함에 대한 동경,

그리고— 부러움.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던 걸까.

입에 담배를 문다.

불을 붙이고, 깊게 들이마신다.

연기를 뿜으며 무언가가 내 안에서 빠져나가는 느낌.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뜬다.


이번엔 유튜브가 켜진 모니터 앞이다.

동영상 제목:

“풀리지 않은 감정이 당신의 경험을 반복하게 합니다”

희미하게 들리는 단어들:

“엔트로피…”

“무의식…”

“칼 융…”

모니터에 비친 내 모습.


생소하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아닌 듯하다.

“무엇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까?”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일까?”


무심코 바닥을 본다.

개미들이 한 줄로 행진하고 있다.

일관된 거리, 반복되는 패턴.

누가 시킨 것도 아닐 텐데.

나는 한 마리를 떼어낸다.

그리고,

뒤에 있던 개미가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메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책상 위에 펼쳐진 To-Do 리스트.

운동하기.

책 읽기.

채식 식단.

누구나 좋다고 말하는 삶의 목록.

하지만 나는 리스트를 찢어버린다.

이것을 따르는 것도 내가 아니고,

이것을 찢는 것도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삶을 살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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