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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소녀 권기옥 ‘조선총독부 폭격’ 투지로 비행사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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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래요잘살자
댓글 0건 조회 1,491회 작성일 15-08-2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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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 첫 여성비행사 평전소설 ‘날개옷을 찾아서’ 낸 작가 정혜주씨
ㆍ여학교 때 3·1운동 가담·중국 망명1925년 윈난항공학교 졸업장 입수시동생 이상화 시인과 찍은 사진도독립운동·여성 자아실현 과제 매진조국 해방 위해 날아오른 강철날개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권기옥(1901~1988). 그의 생애가 작가 정혜주씨(52)의 평전소설 <날개옷을 찾아서>(하늘자연)로 거듭났다.

평양에서 태어나 17살 때 미국인 아트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보고 비행사의 꿈을 품었던 권기옥은 숭의여학교 시절 3·1운동에 가담하는 등 독립운동에 나섰다가 중국으로 망명한다. 비행기를 타고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안기겠다는 투지로 상해임시정부의 추천장을 받아 윈난항공학교에 입학하고, 1925년 2월 중국과 한국의 최초 여성비행사가 된다. 임시정부가 독립군 항공대를 창설할 여력이 없어 중국공군에 투신, 항일전선에서 싸우고 무공훈장까지 받는다. 해방 이후 공군 창설에 기여해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로 불렸던 그는 이상화 시인의 형인 독립운동가 이상정의 부인이기도 하다.


이런 권기옥의 생애가 온전히 재구성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작가 정씨는 권기옥을 일컬어 “모국 해방을 위해 날아오른 독립운동의 강철날개”라고 하면서도 “해방 이후 그녀의 삶은 양 날개 중 왼쪽 날개를 꺾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한다. “권기옥은 조국 독립에 헌신하기 위해 의열단, 아나키스트들과 교류했습니다. 그렇다고 좌파는 아니었죠. 철저한 중도였는데, 그마저도 분단 이후 남한에서는 조심스러운 문제였어요.”

정씨의 소설 작업은 권기옥의 완전한 복권이자 제국과 식민지, 전쟁과 여성의 문제를 숙고하는 여정이었다. 10여년 전 ‘딸과 함께 읽는 여성 이야기’를 기획하면서 권기옥을 찾아낸 그는 무척 기뻤다. 

‘소녀의 몸으로 일제에 고문당해 죽은’ 유관순, ‘상해임시정부 요인들의 밥을 지었던’ 정정화 등 독립운동사 역시 비켜가지 못한 가부장적 시각을 벗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24세에 비행사가 돼 하늘로 날아오른 권기옥은 조국 독립과 여성의 자아 실현이란 이중과제를 실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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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7월5일 권기옥이 윈난항공학교에서 첫 단독비행에 성공한 직후 찍은 기념사진. | 정혜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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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3월 난징을 방문한 시동생 이상화 시인(왼쪽)과 남편 이상정(오른쪽)의 어깨에 팔을 걸친 권기옥. | 정혜주씨 제공


그런데 2005년 장진영 주연의 영화 <청연>이 개봉하면서 박경원(1901~1933)이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로 잘못 알려졌다. 박경원은 일본 다치가와 비행학교에 입학해 1927년 1월 일본제국비행협회가 주는 3등 비행사 면허증을 받았다. 그 후 1933년 일제의 만주국 건국 1주년 기념 ‘일만친선 황군위문 일만연락비행’을 하던 중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영화는 1994년 출간된 일본 여성작가 가노 미키요의 평전 <건널 수 없는 해협>에 근거해 제작됐다. 정씨는 영화 개봉 열흘 전 박경원이 최초의 여성비행사가 아니란 사실과 그의 친일 행적을 인터넷에 올렸다. 영화는 박경원을 민족주의자로 미화한 터라 관객들의 거센 비난에 부딪혔고, 개봉 열흘 만에 내렸다.

“권기옥과 박경원의 최초 논란은 복잡한 한·일관계의 단면입니다. 일제는 1932년 윤봉길 의거가 일어난 이듬해 내선일체를 내세워 박경원을 ‘일만연락비행’에 참가시키고, 국내 신문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합니다. 그런 박경원은 1965년 한일협정 이후 한국여성항공협회와 일본부인항공협회의 교류과정에서 재등장하죠.” 지금도 권기옥은 최초의 전투기 여성비행사, 박경원은 최초의 민간기 여성비행사라는 식으로 이원화돼 회자되는 실정이다.


오래전 기획했던 집필이 늦어진 건 자료수집의 어려움 때문이다. “생전에 일간지에 연재된 회고록이 남아 있지만 중국 국공합작시기인 1925~1926년, 의열단과 접촉한 1934~1935년 등의 시기는 빠졌어요. 여운형, 김원봉 등 사회주의자들과의 접촉 사실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씨는 중국 현지 취재와 중·일 자료 등을 통해 이 부분을 일일이 확인했다. 권기옥의 친척을 통해 입수한 앨범에는 윈난항공학교 졸업장, 시동생인 이상화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이 들어 있었다. 그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권기옥을 알리기 위해 평전이 아니라 평전소설로 썼다”면서 “그러나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소설을 쓰는 동안 상상력을 제한하고 중압감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소설은 식민지 소녀가 비행사가 되기까지 과정을 누에가 나비로 성장하는 데 비유했다. 작가는 1992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면서 한백이란 필명으로 노동문학 작품을 쓰다가 2000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로 재등단한 뒤 소설집 <내 안의 불빛>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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