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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틀렸다고 하면 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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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사랑
댓글 0건 조회 1,404회 작성일 15-10-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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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틀렸다고 하면 끝인가


“하도 깔 게 많아, 어디서부터 까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 전 어느 젊은 여성이 페이스북에 쓴 페미니즘 비판글을 보았다. 동의하는 대목도 있고, 반박하고 싶은 부분도 있는 글이었는데 무엇보다 필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젊고 아름다운 보수진영의 칼럼니스트라고 한다.

IE001863863_STD출처: 오마이뉴스, ‘“<맥심>이 왜 폭력 미화?” 프리 아나운서 발언 ‘시끌’

댓글을 보니 동의와 지지의 글도 있지만 비난과 조롱이 많다. 내 타임라인에서는 그녀를 비판하는 글이 많았다. “하도 어이가 없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까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도 제법 보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깔지 모르겠으면 그런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깔 거면 하나하나 차근차근 비판하면 된다.

나는 그녀의 글보다 글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대중을 설득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타인의 생각과 주장이 나와 다를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 내 반대진영에 있는 사람의 주장에 대해서는?

 

대중을 설득한다는 것에 대하여

내가 보기에 잘못되고, 무식하고, 깔 필요조차 못 느낄 정도로 어이없는 주장, 당연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주장에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지지하고, 심지어 찬사를 보내는지 이해할 필요를 못 느낀다면 영원히 진영논리 안에서 사는 길밖에 없다. 나는 다 아는데 모르는 너는 한심하다는 태도, 선명하고 단순한 주장 뒤에 섬세한 설명은 생략하는 관행, 이런 방식의 운동이 대중적으로 살아남기는 어렵다.


운동의 위기는 운동진영이 말하는 대로 “분단과 반공이데올로기, 보수우익 정권의 장기집권으로 인한 진보진영의 약화”라는 사회구조적 측면이 크다. 진보진영이 집권하기에 제도적으로 많이 불리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 주장하면 영원히 정권 탓, 남 탓만 하는 사회불만 세력의 오명을 씻지 못한다. 운동권 짬짜미와 운동권 사투리에서 벗어나려는 성찰과 변화의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여성운동, 여성주의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당연한 모순이 존재하는데 이를 부정하거나 모르는 주장들이 한심해 보일 수 있다. 당신 눈에 한심해 보이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소수라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당신의 주장을 다수로 만들려면 계속 설득하고 성실하게 대답해야 한다.


태초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 앎은 경험과 인식이 계속 변화하면서 확장되는 과정인데, 그 사람 인생의 한 국면에서 당신의 친절한 대답과 설득이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금까지 많은 운동가들이 책을 통해, 친구와 선배를 통해, 경험을 통해 그런 깨달음의 과정을 거쳤고, 다른 이의 가치관에 계속 자극을 주면서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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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자 때리는 여자 얘기는 안 하느냐”, “왜 여자는 늘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느냐”, “남자의 성욕은 제어하기 어렵지 않느냐”… 사소하고 유치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물음들이라고 일축만 할 것인가.


이데올로거가 아닌 대중들은 이런 의문과 불만을 흔하게 가지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구조적인 피해자라는 걸 모른다고 멍청이라 비난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해소되지 않은 물음은 ‘제대로 답도 못하면서 무시하고 계몽만 하는 존재’에 대한 혐오와 분노로 남아 어느 순간 발산된다. 그것이 선거일 수도, 일베일 수도, 여성혐오일 수도, 남성연대일 수도 있다.


주장한 후에는 답해야 하고, 차근차근 설득해야 한다. 어떤 주장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지향이 서로 다르다 해도, 경청하고 통할 만한 지점이 있다면 그것대로 인정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정말 그 반응들이 응답할 가치 없는 것일까

해당 글 안에 “살아보니 ‘오로지 내가 여자라서’ 겪는 억압이니 억울함 같은 건 정말 1도 없더라”라는 대목은 거칠고 선명하다. 이 주장에 대해 니가 차별을 안 당해봐서 모른다는 비난은 초점부터 다르다. 그녀의 주장은 한국이 여성에 대한 억압이 없는 사회라는 게 아니라, 따옴표로 강조했듯 모든 억압과 억울함을 ‘오로지’ 여자라서 겪는 억압이나 억울함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반박이다. 그 아래 본문에는 이런 설명도 해 놓았다. “억압과 차별을 1도 안 받아본 인생이란 게 어디 있을까. 오로지 여성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로 억압받는 일은 없었다는 의미고 그건 대다수 여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뭐? 여성억압이 1도 없다고?”에만 머문다.


최근의 여성혐오 반대 움직임과, 페미니스트 선언 운동에서 이 여성은 이런 문제의식을 느꼈을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문제들 – 성희롱, 여성범죄, 가사 노동, 미적 기준 등 – 은 대부분 여성이라는 단일한 억압의 문제가 아니며, 권력의 개입, 개인의 자존감 등 여러 부분이 있다”는 주장, “여성주의가 강력 범죄자의 수를 줄이는 데 실질적 기여를 하는가?”라는 물음을 포함한 것일 수 있다. 여성주의가 남성에 대한 혐오 수준으로 저평가되는 것에 대한 우려, 구조적인 문제와 더불어 개인 차원의 책임 영역에 대한 강조일 수도 있다.

이런 문제 제기들이 단순히 ‘쓰레기’로 치부할 만큼 의미 없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비단 이 여성뿐일까.

 

내 삶을 바꾸어 놓았던 말과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유치하고 사소한 물음들, 적대적이라 생각하는 진영의 사람들이 가진 나와 다른 주장들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그런 물음들에 답할 수 있으려면 나는 얼마나 더 공부를 해야 하나. 대중을 바보 취급 하지 않고, 나도 바보가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다들 나처럼만 생각하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될 텐데, 사람들은 왜 내 맘 같지 않고 이렇게 다를까,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내 삶의 어떤 순간 가치관에 변화를 주었던 말과 사람을 떠올려본다. 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 좋겠다. 개인인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여성주의도, 진보진영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그런 자극이 되는 존재였으면 정말 좋겠다. 너는 틀렸다고만 하지 말고.


조롱 말고 존중을. 무시 말고 설명을.
외면 말고 인정을. 포기 말고 설득을.
공격 말고 답변을. 비난 말고 비판을.
노력해서 압도를. 안 된다면 공존을.



원문: Women in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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